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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향수 시, 노래 가사 | 정지용 시인 프로필

by sk2nd 2026.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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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향수 시, 노래 가사, 정지용 시인 프로필

1920년대 한국 근대시는 식민지 현실이라는 구조적 억압 속에서 언어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던 시기였습니다. 이 격동의 시기에 등장한 정지용의 「향수」는 개인적 기억과 집단적 정서를 동시에 포획하며, 한국 서정시의 방향을 결정지은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고향이라는 구체적 공간을 통해 상실과 그리움을 노래한 이 시는 발표 이후 약 1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문학 교과서, 음악 무대, 대중문화 전반에서 반복 호출되며 살아 있는 텍스트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특히 1989년 가곡으로 재탄생한 이후에는 문학과 음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대표 사례로 자리 잡으며, 세대 간 공감의 매개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습니다.

정지용 「향수」 시 전문과 기본 구조


정지용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정지용의 「향수」는 총 5연으로 구성된 자유시 형식의 작품으로, 각 연 말미에 반복되는 후렴구를 통해 강한 회귀적 리듬을 형성합니다. 시의 공간은 충청북도 옥천의 농촌 풍경을 중심으로 설정되며, 시적 화자는 타향에 있는 현재의 ‘나’와 기억 속 고향을 오가며 정서를 축적합니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문장은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로, 이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잊을 수 없음에 대한 단언이자 저항의 언어로 기능합니다. 반복을 통해 감정의 밀도를 높이는 동시에, 고향 상실의 비가역성을 독자에게 각인시키는 구조입니다.

창작 배경과 시대적 맥락

「향수」는 1927년 잡지 『조선지광』에 발표되었으나, 실제 창작 시기는 1923년경으로 추정됩니다. 정지용은 일본 도시샤대학 유학 시절, 언어와 문화가 단절된 타지에서 극심한 상실감을 경험하였고, 이 감정이 고향 옥천 수북리의 기억과 결합되어 작품으로 형상화되었습니다. 당시 조선 청년 지식인에게 고향은 단순한 출생지가 아니라, 식민지 현실에서 상실된 정체성과 공동체를 상징하는 공간이었습니다. 따라서 「향수」는 개인적 서정시인 동시에, 시대적 상실을 은유적으로 드러낸 텍스트로 읽힙니다.

시적 이미지와 언어적 특징

정지용 시의 가장 큰 특징은 감각어의 정교한 배치입니다. 「향수」에는 시각, 청각, 촉각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이미지가 연속적으로 등장합니다. ‘금빛 게으른 울음’, ‘전설 바다’, ‘석근 별’과 같은 표현은 일상어와 시어의 경계를 흐리며, 한국어의 음성적 질감을 극대화합니다. 또한 ‘질화로’, ‘짚베개’ 같은 전통적 생활어휘는 농촌의 구체적 현실감을 부여하는 동시에, 사라져가는 삶의 방식을 기록하는 기능도 수행합니다. 이러한 언어 전략은 이후 한국 현대시에서 이미지 중심 시학이 정착되는 데 중요한 기준점이 되었습니다.

반복 구조와 후렴의 기능

각 연의 마지막에 동일하게 배치된 문장은 단순한 반복을 넘어 구조적 장치로 작동합니다. 후렴은 독자의 감정을 매 연마다 원점으로 되돌리면서, 기억의 깊이를 점층적으로 강화합니다. 이는 노래 가사로 전환되었을 때도 강력한 장점으로 작용하여, 음악적 클라이맥스를 자연스럽게 형성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문학적 장치가 음악적 구조와 자연스럽게 결합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반복 구조에 있습니다.

가곡 「향수」로의 확장

1989년, 작곡가 김희갑은 정지용의 「향수」에 곡을 붙여 가곡으로 발표했습니다. 이 작품은 테너 박인수와 포크 가수 이동원의 듀엣으로 초연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클래식 성악과 대중가요가 한 곡 안에서 공존한 이 사례는 한국 음악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시도로 평가됩니다. 가사는 시 원문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여 문학적 완성도를 훼손하지 않았고, 멜로디는 각 연의 후렴에서 정서를 극대화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노래 가사의 음악적 특징

정지용 향수 노래 악보(박인수, 이동원 노래: 김회갑 작곡)

가곡 「향수」는 서정적 선율과 절제된 반주를 통해 시어의 의미를 강조합니다. 특히 “잊힐 리야” 부분에서의 음역 상승은 청중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끌어올리며, 그리움의 정점을 형성합니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독창, 합창, 편곡 버전 등 다양한 형태로 재생산되었고, 학교 음악 교육과 합창 레퍼토리의 단골 작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현대 문화와 교육 속 「향수」

「향수」는 국어 교과서와 음악 교과서에 동시에 수록된 드문 사례로, 문학과 음악을 아우르는 융합 교육의 대표 텍스트입니다. 또한 충청북도 옥천 지역에서는 정지용 문학관과 ‘향수 길’ 조성 사업을 통해 문학 관광 자원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습니다. 방송 프로그램, 다큐멘터리, 광고 음악에서도 반복적으로 사용되며, ‘고향’이라는 개념을 상징하는 문화 코드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정지용 시인 프로필

정지용은 한국 현대시의 언어적 지평을 확장한 시인으로 평가됩니다. 아래는 시인의 핵심 이력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 출생: 1902년 5월 15일, 충청북도 옥천
  • 본명: 정진욱(鄭進旭)
  • 학력: 휘문고보 졸업, 일본 도시샤대학 영문학과 중퇴
  • 직업: 시인, 문학평론가, 교사
  • 주요 활동: 이화여자전문학교, 휘문중학 등에서 교육 활동 병행
  • 대표작: 「향수」, 「유리창」, 「고향」, 「바다」, 「등불」
  • 문학사적 의의: 감각적 이미지와 상징어 도입을 통한 한국 시어 혁신
  • 생애 말기: 1950년 한국전쟁 전후 실종, 납북설 존재

문학사적 평가와 의의

정지용의 「향수」는 단순히 아름다운 고향 시를 넘어, 상실의 시대를 살아간 지식인의 내면 기록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언어 실험과 감각적 이미지, 반복 구조를 통해 한국어 시의 가능성을 확장했으며, 이후 세대 시인들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한 가곡으로 재탄생함으로써 문학 작품이 다른 예술 장르와 어떻게 상호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모범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결론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가 남긴 울림

정지용의 「향수」는 시와 노래, 교육과 문화 전반을 관통하며 한국인의 집단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된 작품입니다. 개인적 그리움에서 출발했지만,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공감되는 보편적 정서를 획득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문학과 음악이 결합한 이 작품은 앞으로도 한국 문화의 중요한 참조점으로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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