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시모음 - 이해인
2월은 시간의 결이 유난히 또렷한 달입니다. 달력 위에서는 가장 짧지만, 감정의 밀도만큼은 결코 얕지 않습니다. 겨울의 끝자락에 서 있으면서도 봄의 첫 숨결을 가장 먼저 감지하는 달이기 때문입니다. 눈과 얼음의 기억이 아직 몸에 남아 있는 상태에서, 흙속에서는 이미 새로운 기척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2월을 노래한 시편들에는 공통적으로 ‘사이’라는 정서가 흐릅니다. 끝과 시작, 정지와 움직임, 체념과 희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마음이 2월이라는 시간 속에 투영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여러 시인이 바라본 2월의 시모음을 차분히 따라가며, 시마다 감상과 해설을 덧붙이고, 시인에 대한 간략한 프로필을 함께 정리해 보겠습니다.
이해인, 「2월의 시」
2월의 시 - 이해인
하얀 눈을 천상의 시처럼 이고섰는
겨울나무 속에서 빛나는 당신1월의 찬물로 세수를 하고
새벽마다 당신을 맞습니다답답하고 목 마를 때
깎아 먹은 한 조각 무맛 같은 신선함당신은 내게 잃었던 주지 못한 일상에
새옷을 입혀준 고통과 근심내가 만든 한숨과 눈물 속에서도
당신의 조용한 노래로 숨어 있고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우리의
인사말 속에서도
당신은 하얀 치아를 드러내
웃고 있습니다내가 살아 있음으로 또 다시 당신을
맞는 기쁨 종종 나의 불신과 고집으로
당신에게 충실히 못했음을
용서하세요새해엔 더욱 청정한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이 시에서 2월은 단순한 계절 단위가 아니라 ‘당신’이라는 호명으로 의인화됩니다. 시적 화자는 2월을 맞이하며 자신의 삶과 태도를 반성하고 다짐합니다. 눈과 겨울나무, 새벽이라는 이미지가 반복되지만 그 정조는 차갑기보다 맑습니다. 특히 ‘새옷을 입혀준 고통과 근심’이라는 표현은 2월을 시련의 달이자 정화의 시간으로 인식하게 만듭니다. 고통조차 삶을 새롭게 만드는 요소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이해인 시 특유의 기도문 같은 울림이 드러납니다. 이 시의 2월은 새해의 연장선이 아니라, 새해를 진짜로 살아내기 위한 마음가짐을 다지는 시간입니다.
시인 프로필 - 이해인
- 등단 시기: 1960년대
- 주요 특징: 종교적 성찰과 일상의 언어를 결합한 서정시
- 대표 이미지: 기도, 계절, 자연, 마음의 정화

오세영, 「2월의 시」
2월의 시 - 오세영
‘벌써’라는 말이
2월처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새해 맞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지나치지 말고 오늘은
뜰의 매화가지를 살펴보아라항상 비어 있던 그 자리에
어느덧 벙글고 있는
꽃…세계는 부르는 이름 앞에서만
존재를 드러내 밝힌다외출을 하려다 말고 돌아와
문득 털 외투를 벗는 2월은
현상이 결코 본질일 수 없음을
보여 주는 달‘벌써’라는 말이
2월만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오세영의 2월은 시간 인식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벌써’라는 말에 집약된 조급함과 허망함이 2월의 정서로 확장됩니다. 매화가지, 털 외투, 외출을 망설이는 장면 등 일상적인 소재가 등장하지만, 시는 점차 인식론적인 질문으로 이동합니다. ‘현상과 본질’이라는 대비는 2월이 단순히 겨울의 연장이 아니라 사유의 계절임을 암시합니다. 겉으로는 여전히 춥고 삭막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이미 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2월은 조용히 증명합니다.
시인 프로필 - 오세영
- 등단 시기: 1960년대
- 주요 특징: 사유적 서정과 존재론적 질문
- 대표 이미지: 시간, 언어, 인식의 전환

정연복, 「2월」
2월 - 정연복
일 년 열두 달 중에
제일 키가 작지만조금도 기죽지 않고
어리광을 피우지도 않는다추운 겨울과
따뜻한 봄을 잇는징검다리 역할
해마다 묵묵히 해낸다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기어코 봄은 찾아온다는 것슬픔과 고통 너머
기쁨과 환희로 가는 길은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음을
가만가만 깨우쳐 준다이 세상의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여나를 딛고
새 희망 새 삶으로 나아가라고자신의 등 아낌없이 내주고
땅에 바싹 엎드린몸집은 작아도 마음은
무지무지 크고 착한 달
이 시에서 2월은 의젓한 존재로 형상화됩니다. 가장 짧은 달이지만 ‘징검다리 역할’을 묵묵히 해내는 모습은 인간 삶의 태도에 대한 은유로 읽힙니다. 겨울과 봄을 잇는 존재, 슬픔과 기쁨을 연결하는 존재로서의 2월은 겸손과 헌신의 상징입니다. 이 시는 독자에게 조용한 용기를 건넵니다. 지금이 아무리 작고 초라해 보여도, 그 자리는 분명 다음 계절로 가는 필수적인 디딤돌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시인 프로필 - 정연복
- 활동 분야: 시와 산문
- 주요 특징: 따뜻한 교훈성과 일상적 언어
- 대표 이미지: 달, 사람, 희망의 은유


목필균, 「2월」
2월 - 목필균
바람이 분다
나직하게 들리는
휘파람 소리
굳어진 관절을 일으킨다얼음새꽃
매화
산수유
눈 비비는 소리톡톡
혈관을 뚫는
뿌리의 안간힘이
내게로 온다실핏줄로 옮겨온
봄기운으로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햇살이 분주하다
목필균의 2월은 감각의 집합체입니다. 바람 소리, 관절의 움직임, 얼음새꽃과 매화, 혈관을 뚫는 뿌리의 힘까지, 자연과 신체가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이 시는 봄을 선언하지 않습니다. 대신 ‘몸을 일으키는 햇살’이라는 표현을 통해 미세하지만 분명한 변화를 포착합니다. 2월은 아직 완전한 봄이 아니기에, 그 변화는 조심스럽고 느리지만 그렇기에 더 진실합니다.
시인 프로필 - 목필균
- 활동 성향: 자연 감각 중심 서정
- 주요 특징: 신체와 계절의 연결
- 대표 이미지: 바람, 햇살, 뿌리


박신애, 「2월의 나무처럼」
2월의 나무처럼 - 박신애
저 음울한 겨울나무가지에
파아란 잎이 돋고새 생명 어여쁜 꽃이 피어날 거란 말이지
한겨울 내내 몸살을 앓다가
봄의 길을 트는 바람에도마음과 마음의 길을 열어주는
사랑의 꿈이 숨어 있을 터몸과 마음을 움츠리게 하던
추운 계절은 가고어둔 골짜기를 비켜 흐르는 물소리
이어 명랑한 새소리 들리는 이월이다일제히 일어서는 나목들처럼
함께 일어서자 우리어깨 나란히 함께하는 나무처럼
이 시는 공동체적 메시지가 분명합니다. 겨울나무는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시련을 견디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함께 일어서자’라는 문장은 2월을 개인의 성찰을 넘어 연대의 시간으로 확장합니다. 아직 잎도 꽃도 없지만, 그 가능성을 믿는 마음이 바로 2월의 힘이라는 점을 이 시는 강조합니다.
시인 프로필 - 박신애
- 주요 특징: 관계와 연대의 서정
- 대표 이미지: 나무, 길, 함께함

양광모, 「2월 예찬」
2월 예찬 - 양광모
이틀이나 사흘쯤
더 주어진다면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겠니
2월은 시치미 뚝 떼고
방긋이 웃으며 말하네겨울이 끝나야
봄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봄이 시작되어야
겨울이 물러가는 거란다
양광모의 시는 2월을 철학적으로 전복합니다. 겨울이 끝나야 봄이 오는 것이 아니라, 봄이 시작되어야 겨울이 물러난다는 인식은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변화는 조건이 아니라 결단에서 시작된다는 메시지가 2월이라는 시간에 정확히 겹쳐집니다.
시인 프로필 - 양광모
- 주요 특징: 명료한 메시지와 반전적 사고
- 대표 이미지: 계절의 전환, 인식의 전환

홍수희, 「2월 편지」
2월 편지 - 홍수희
어딘가 허술하고
어딘가 늘 모자랍니다하루나 이틀
꽉 채워지지 않은
날수만 가지고도
2월은 초라합니다겨울나무 앙상한
가지 틈새로 가까스로
걸려 있는 날들이여꽃빛 찬란한 봄이
그리로 오시는 줄을
알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1년 중에
가장 초라한 2월을
당신이 밟고 오신다니요어쩌면 나를
가득 채우기에
급급했던 날들입니다조금은 모자란 듯 보이더라도
조금은 부족한 듯 보이더라도사랑의 싹이 돋아날
여분의 땅을 내 가슴에
남겨두어야 하겠습니다
이 시에서 2월은 ‘모자람’의 상징입니다. 날수도 짧고, 무엇 하나 꽉 차지 않은 듯 보이는 달. 그러나 시는 그 모자람 속에 여백의 가치를 발견합니다. 사랑이 자라날 공간, 꽃씨를 품을 빈터를 남겨두는 지혜가 바로 2월의 미덕입니다.
시인 프로필 - 홍수희
- 주요 특징: 결핍을 긍정으로 전환
- 대표 이미지: 편지, 여백, 기다림

양애희, 「이런 2월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2월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양애희
축복의 하이얀
그리움 따라 훨훨 날아서
꼭 만나고 싶은 사람 모두 만나아름다운 이름으로 기억하는
가슴 오려붙인
2월이었으면 좋겠습니다저문 시간들 깊은 침묵이
어른거리는
어둠 지나 길게 흐르는 아픔 여의고한 그루 맑은 인연 빚어대는
빛이 나는
2월이었으면 좋겠습니다심장 깊이 동여맨 나뭇잎
바스락바스락
온몸이 아파올 때푸른 약속 흔들며 바람을 덮는
따뜻한
2월이었으면 좋겠습니다오색 불빛 찬란한 거리
그 어딘가
주름진 달빛 사이로 허기진
외로움 달래는영혼 살포시 안아주는 그런
2월이었으면 좋겠습니다저문 강가 뉘 오실까
깊은 물 소리만 허망한 심장에
출렁거릴 때가슴 빈터에 흠뻑 적셔줄
꽃씨 하나 오롯이
진하게 품는
2월이었으면 좋겠습니다추억의 창문마다 뒹구는
허공의 손끝 삐걱거리는 낡은
커튼 걷어세상 칸칸에 행복이 흩날리고
찬란한 춤사위가 벌어지는
반짝반짝 별모양의
2월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양애희의 2월은 소망의 집합입니다. 축복, 인연, 치유, 빛, 별처럼 반짝이는 이미지들이 연쇄적으로 등장합니다. 이 시는 2월을 현재형이 아닌 미래형으로 노래합니다. 그래서 읽는 이의 마음에도 ‘이런 2월을 살아보고 싶다’는 바람을 남깁니다.
시인 프로필 - 양애희
- 주요 특징: 기원과 축원의 언어
- 대표 이미지: 빛, 인연, 따뜻한 시간

결론
2월의 시들은 공통적으로 말합니다. 지금은 완성이 아니라 준비의 시간이며, 정지는 끝이 아니라 숨 고르기라는 사실을. 가장 짧은 달이기에 오히려 가장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시간, 그것이 시 속의 2월입니다. 이 시편들을 통해 2월은 더 이상 애매한 달이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달로 다가옵니다. 겨울을 견뎌낸 모든 이들에게 조용히 등을 내어주는 달, 바로 2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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