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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박대성 화가 프로필 나이, 이건희 BTS RM 화백

by sk5th 2025.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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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성 화가 프로필 나이, 이건희 BTS RM이 좋아한 화백

한국 수묵화의 거장, 박대성의 예술 인생

한국 수묵화의 현대적 부흥을 이끌며 ‘한국화 르네상스’의 주역으로 불리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화가 박대성(朴大成, 호: 소산)입니다. 그는 한 팔의 장애를 극복하고 오직 붓과 먹으로 한국 미술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전통의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대형 화면과 실험적 구성을 통해 수묵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그는, BTS의 RM과 고(故) 이건희 회장까지 감탄한 ‘진정한 한국의 예술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박대성 화가 프로필

  • 이름: 박대성 (朴大成)
  • 호: 소산(小山)
  • 출생: 1945년 경상북도 청도군
  • 학력: 금천중학교 졸업 (정규 미술교육 없이 독학)
  • 종교: 천주교
  • 주요 활동지: 경주 삼릉 작업실, 불국사 인근
  • 대표작: 상림, 천지인, 금강화개, 고미, 경주 남산 시리즈
  • 수상: 1979년 중앙미술대전 대상, 2025년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특별대상 외 다수

그의 프로필에서 가장 인상 깊은 점은 ‘정규 미술 교육 없이 독학으로 거장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흔치 않은 예술적 여정으로, 박대성 화백의 인생 전체가 ‘자기 수련과 극복의 예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시련과 독학의 시작

박대성 화백은 다섯 살 무렵 한국전쟁 중 불의의 사고로 왼팔을 잃고 부모까지 잃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절망 대신 예술을 택했습니다. 그는 숯으로 땅에 그림을 그리며 상상력을 키웠고, 정규 교육 없이 스스로 붓의 세계를 탐구했습니다. 이후 18세 때 서정묵 선생 문하에 들어 5년간 수묵화를 배우며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걸었고, 이영찬·박노수 교수의 지도 아래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해갔습니다.

예술적 전환점과 등단

1966년 첫 등단 후 1979년 중앙미술대전에서 ‘상림’으로 대상을 수상하며 미술계의 주목을 받습니다. 1984년에는 가나아트센터 최초 전속 작가로 선정되며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뉴욕 유학을 거쳐 세계 미술의 흐름을 직접 체험한 뒤, 경주로 돌아와 자신의 철학인 ‘수묵 모더니즘’을 정립했습니다.

수묵의 혁신가 – 박대성의 작품 세계

그의 작품 세계는 ‘실경산수’라는 표현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실재하는 자연을 눈앞의 사실처럼 재현하되, 그 속에 ‘동양 정신과 선의 미학’을 담아냅니다.

대표작과 특징

박대성, 불국설경, 1996, Ink on paper, 291.6x1084cm

  • 불국설경: 불국사의 설경을 압도적 스케일과 먹의 농담으로 표현한 걸작.
  • 천지인: 인간과 자연, 하늘의 조화를 상징적으로 형상화.
  • 금강폭포: 7m에 달하는 대형 수묵화로, 거대한 자연의 힘을 먹의 번짐으로 표현.
  • 코리아 판타지: 단군, 광개토대왕비 등 한국적 유산을 한 화면에 압축.
  • 고미: 고미술품을 현대적 색채로 재해석한 시리즈.

박대성, 코리아 판타지, 2022, 1200x500cm

그의 그림은 대부분 가로 7~10m에 이르는 초대형 규모이며, 오목렌즈나 독수리 시점과 같은 파격적 구도를 사용합니다. 색채는 거의 쓰지 않으며, 먹의 농담만으로 공간과 감정을 표현하는 절제의 미학을 보여줍니다.

박대성, 삼릉비경, 2017, Ink on paper, 400x800cm 경주 솔거미술관ㅇ
박대성, 금강, 2021
<불밝힘굴> <고목> <청음(병산서원)>

예술 철학 – “그림이 곧 사람이다”

박대성 화백은 “그림은 곧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말합니다. 매일 새벽 서예를 수련하며 붓의 정신을 단련하는 그는, 예술을 단순한 창작이 아니라 수행(修行)으로 여깁니다. 이러한 태도는 작품에 고요함과 강렬함을 동시에 담아내는 힘이 됩니다.

<현향> - 박대성
<현송> - 박대성

전시 이력 및 소장처

  • LACMA(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하버드, 다트머스 등 세계 유수 미술관 전시
  • 호암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청와대 소장
  • 2018년 남북정상회담 환담장 작품 전시
  • 고(故) 이건희 회장, BTS RM 등 주요 컬렉터 소장

이처럼 그의 작품은 국내외 미술계에서 꾸준히 주목받으며, ‘한국 수묵화의 세계화’를 이끈 핵심 작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수상 경력 및 주요 업적

  • 1979년 중앙미술대전 대상
  • 1984년 가나아트센터 최초 전속 작가
  • 1990년대 이후 경주 삼릉 ‘소산수묵화실’ 운영
  • 2025년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특별대상
  • 각종 미술상 및 국내외 초대전 다수

이러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는 명예와 부보다 ‘예술의 공공성’을 중시했습니다.

기억나세요? 경주 솔거미술관에서 초등학생 잼민이가 박대성 화백 작품에 올라가 작품을 훼손했던 사건요.

이때 박대성 화백은 "훼손? 고놈이 내겐 '봉황'이다."라고 발언했었죠. 저 아이 사건 때문에 본인이 유명해졌다고 말이죠. 원래도 유명하셨던 분인데 참 큰 사람은 용서도 참 통크십니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된 박대성 작가의 ‘일출봉’. /전남도립미술관

RM과 박대성의 인연

BTS의 RM은 한국 전통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아티스트로 유명합니다. 그는 직접 박대성 화백의 작품을 구매해 SNS에 올리며 “진정한 한국의 미를 느낄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 게시물로 인해 박대성 화백의 이름은 전 세계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고, 젊은 세대에게 ‘한국화의 부흥’을 이끈 인물로 재조명되었습니다. 박대성의 부인 정미연 화백은 방송에서 “RM이 작품을 인증하자 딸아이의 전화기가 폭발할 정도였다”며 웃으며 회상했습니다.

진정한 부의 철학 – 나눔과 기증

박대성 화백은 ‘미술품의 공유화’를 실천하며, 추정가 수십억 원에 달하는 작품 830점을 사회에 기증했습니다. 이는 예술의 사유화를 경계하고 공공의 가치로 돌려주려는 신념의 표현입니다. 그뿐 아니라 평생 모은 고미술품 컬렉션도 국가와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의 부인 정미연 역시 작품을 판매하지 않고, “돈은 내가 벌 테니 당신은 그림만 그리라”는 남편의 말을 지켜 예술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방송에서 공개된 진짜 백만장자의 삶

EBS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에 출연한 박대성·정미연 부부는 물질이 아닌 ‘마음의 부자’로서의 삶을 보여주었습니다. 방송에서는 퇴계 이황의 소장품, 추사 김정희의 현판 등 ‘국립박물관급 컬렉션’이 공개되었고, 이를 “한국 땅에 남기겠다”는 부부의 말은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또한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에 부부의 미술관을 세워 외국 학생들에게 한국의 정신과 예술을 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박대성 예술이 미친 영향

그의 예술은 단순한 회화의 경계를 넘어 한국인의 정체성과 정신성을 되살리는 역할을 합니다.

  1. 한국화의 세계화 - 전통 수묵기법을 기반으로 현대적 감각을 결합해 세계 미술계에 ‘K-Art’의 가능성을 보여줌.
  2. 젊은 작가 세대에 영감 - 부감법·파노라마 구도 등 파격적 실험으로 도전 의식 고취.
  3. 정신적 예술관 - 물질보다 예술의 본질을 중시하는 가치관으로 사회적 존경 획득.

론 – 수행자이자 스승으로 남은 이름

올해 여든의 나이에도 매일 붓을 드는 박대성 화백은 “붓을 쥐고 죽을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라 말합니다. 그의 인생은 예술을 넘어 ‘인간의 정신력’ 그 자체입니다. 한 팔의 결손을 예술로 승화시켜 전 세계에 한국의 수묵정신을 알린 그는, 물질보다 나눔을 택한 진정한 백만장자이자, 세대와 국경을 넘어 존경받는 화가로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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